일본 음악의 진면목을 찾아서 ... vol.1 해피엔드 음악이야기



 


맴버

호소노 하루오미

오오타키 에이이치 (중심 인물)

마츠모토 타카시

스즈키 시게루

 

앨범

はっぴいえんど (1970)

風街ろまん (1971)

HAPPY END (1973)

 

<인트로>

아시아권 최고의 음악 시장인 일본은 과거 정권의 힘으로 국내에 소개가 안되어 미지의 음악 시장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국내 소개가 잘 안 된다는 점을 악용한 일본음악을 표절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 하곤 했다. 전면 개방이 되었지만 아직도 공중파에서 일본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며 특히 지금의 그들의 거대한 음악시장을 탄생 시킨 좋은 음악들은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시리즈로 소개가 될 이 글은 그런 일본 음악의 힘을 만든 인물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음악을 논할 때 일본 음악을 아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시작은 바로 이번에 소개하는 밴드, 해피엔드로 시작할 것이다. 그 정도로 그들은 일본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 영향은 지금도 유효할 정도로 파급력이 있는 밴드이다.

1960년대 말 비틀즈를 비롯 해외 유명 록 밴드의 영향을 받은 많은 밴드들이 일본에서 결성되면서 일본에서 록음악의 붐이 불기 시작했다. 그때 일본은 한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바로 가사의 일본어화이었다. 록음악에는 일본어가 안 맞는다는 주장과 함께 영어로 부르는 밴드들이 꽤 존재 했고 당시 일본 록 계에서는 영어로 부르는 것이 록음악답다는 주장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한 논란이 가중 되고 있었던 1970, 해피엔드는 결성 되었다. 결성되어 처음에는 ハッピエンド로 지었으나, 이후 はっぴいえんど로 바꾸게 되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로 비록 영어이지만 자국어로서 음악을 한다는 의지를 보이는 행동이었다.

 1970년 해피엔드의 데뷔 앨범 はっぴいえんど에서 일본어로 된 음악을 선보이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싱글 커트된 ‘12는 비록 높은 인기를 모우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감수성을 인정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에 내놓은 그들의 2風街ろまん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일본어로 록음악을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일본 록음악계의 최고의 명반으로 대접받고 있는 앨범 風街ろまん는 그들의 대표 곡인 をあつめて는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일본의 여러 뮤지션들을 통해 리메이크 되었고 영화 Lost in Translation (한국 개봉 제목 :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 삽입 다시 인기를 모았다.

이 음반을 기점으로 포크에 기반을 둔 정통파 J-Rock이라는 장르가 형성되는데 이후, 서니 데이 서비스나 쿠루리까지 이어오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장르가 만들어진다.

불행하게도 2집 이후 밴드내 분위기는 악화 해체 상황에 이르렀고 밴드의 리더이자 중심인물인 오오타키가 솔로앨범을 제작은 그러한 상황을 악화 시켰다. 72년 미국에서 마지막 3집을 녹음 후 발매하기도 전에 해체 하였고 이후 각 맴버들은 일본 음악계에 중요한 활동들을 하였다.

 

이들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결코 녹슬지 않는 공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風街ろまん은 일본에서 최고의 록 앨범으로 뽑는 것이 납득 갈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는 걸작이다. 포크를 기반으로 한 음악이기 때문에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그 매력은 반감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오늘의 추천 음악♬: 보사노바 음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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